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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의 주방이 열렸다. 맛의 비법을 꽁꽁 숨겨두는 건 옛날 얘기다. 식당에서 직접 요리를 가르친다. ‘쿠킹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수업 공간도 따로 둔다. 주인인 요리 연구가나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의 새로운 시도다. 맛있는 음식은 나눌수록 좋다는 게 이들의 개방 이유다. 아무리 방법을 알려줘도 손맛은 못 따라 할 거라는 자부심도 깃들어 있다. 새해엔 음식 몇 가지는 제대로 배워보자던 참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현재는 칼질 하나 제대로 못하는 수준. ‘연어 베이글’이 일품이라는 ‘나인스파이스’에서 샌드위치부터 배워봤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레스토랑 ‘나인스파이스’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요리 수업이 열린다. 궁금한 것은 그때그때 물어볼 수 있고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도 수다를 떠는 편안한 분위기다.

주부부터 창업 준비자까지 그 집 손맛 따라잡기

서울 신사동 로데오 거리에 있는 나인스파이스는 샌드위치·파스타 등을 파는 일반음식점이면서 홍신애 푸드스타일리스트가 한 달에 한 번씩 요리 수업을 한다. 블로그(cafe.naver.com/9spices)에 공지가 뜨면 신청할 수 있는데 4명 이상은 받지 않는다. 1회 8만원으로 일반 요리강습보다 비싸지만 매번 마감이다.

“샌드위치 수업만 따로 하는 곳이 없어서 지금껏 기다렸어요.” 카페 운영을 앞둔 석성희(42)씨가 수업 전 선생님을 보자마자 알은체했다. 50대 주부 조미형(55)씨도 자연스럽게 대화에 꼈다. “저도 동네에서 카페를 준비 중인데 샌드위치를 팔고 싶어요. 이미 식당에서 검증된 메뉴를 만들면 안심이 되잖아요.” 주부 김유정(41)씨는 집에서 만들 수 있는데 비싸게 사먹을 필요가 없다는 게 네 번째 수업에 온 이유였다. 고정민(39)씨는 샌드위치집을 8년째 하고 있는데 추가 메뉴를 구상 중이라며 ‘커밍아웃’했다.

복잡한 레시피 … 핵심만 밑줄 쫙

수업 전 앞치마를 입고 레시피 넉 장을 받았다. 만들 음식은 크로크 무슈, 치킨 브리또, 카프레제 샌드위치, 연어 베이글 네 종류. 예습을 해보려고 먼저 읽었지만 짧은 문장들도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함께 레시피를 보며 메뉴와 재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발사믹 식초와 발사믹 와인식초가 어떻게 다르죠?”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는 왜 필라델피아가 붙었을까요?” 선생님은 툭툭 질문을 던졌다. “자, 계속 집중하고 들으셔야 답을 알고 가실 거예요.”

수강생들이 레시피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어쨌거나 오늘 중요한 건 핵심 소스를 알아가는 거죠. 크로크 무슈는 잊어버려도 베사멜 소스 만드는 법만 알아두세요. 이게 샌드위치뿐 아니라 치즈와 어울리는 모든 요리에 기본으로 쓸 수 있거든요”라며 쉼표를 찍었다. 그 소리에 레시피마다 별표가 서너 개씩 붙었다.

질문하는 만큼 챙길 수 있어

실습에 앞서 시연이 먼저였다.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선생님의 입과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분주한 분위기에도 카페 개업을 준비하는 조씨는 가장 적극적이었다. 칠리소스를 만드는 중엔 “파니니빵에 넣어 새로 개발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물어보고, 큐민·코리엔더 가루 같은 외국 향신료를 소개할 땐 바로 “어디서 사야 하죠?”라고 궁금해했다. 창업을 앞두고 하나하나가 정보인 셈이다. 듣고 있던 고씨도 뒤질세라 디카를 꺼내들고 각종 소스병들을 찍어댔다. 조씨와 고씨는 나인스파이스에서 파는 파스타·샌드위치 레시피를 줄 수 있느냐고도 물었다. 명쾌하게 “예스”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차피 공개해도 똑같은 맛을 내기는 힘들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그렇게 뭐든 물어보기 편한 분위기가 돼서야 질문 하나를 겨우 꺼냈다. “레시피에 있는 ‘약간’이란 대체 얼마나인 거죠?”

수업에서 배운 요리들. 왼쪽부터 연어 베이글, 치킨 브리토, 카프레제 샌드위치.

요리는 자신감이 반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달랐다. 막상 하려 하니 레시피부터 다시 들춰댔다. 3인 1조인 게 다행이었다. 가장 쉬운 연어 베이글부터 손을 댔다. 치즈 스프레드를 바르고 연어를 얹는 모양새부터 선생님이 하던 것과 달리 엉성했지만 ‘완성작’을 보니 왠지 으쓱해졌다. 수업의 핵심이라는 ‘베사멜 소스’는 다른 이에게 미뤄두다 뒤늦게 팬을 잡았다. 여기서도 안 하면 더 할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버터와 밀가루를 넣고 거품이 나면서 노란색이 나지 않을 정도로만 끓이라는 팁에 온 신경을 모았다. ‘적당해요’라는 선생님의 한마디가 떨어지자 이번엔 망설임 없이 칼을 잡고 토마토를 썰기 시작했다.

먹는 재미, 싸가는 즐거움

두 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니 오후 1시30분. 각자 만든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가게에서 쓰는 포장지를 쓰니 더욱 그럴듯했다. 시식 테이블은 시연 때 만든 것들로 차려졌다. 이미 식어서 제 맛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브런치 수다가 시작됐다. 어느 샌드위치 집이 가장 맛있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고, 각자 들었던 요리 수업에 대한 정보 교환도 이뤄졌다. 외국생활 경험, 대학 전공 등 각자의 ‘전력’도 순식간에 공개됐다. 선생님도 허물없이 수다에 나섰다. “주말엔 저도 애들 자장면 시켜줘요.” 한 시간쯤 지나 얘기가 마무리됐다. 다음달에도 같이 수업에 오자는 약속과 함께 외국 식재를 사러 가고 맛집도 순례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사람을 이어주는 요리는 힘이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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